7월 20일날 미니콘서트가 있었다.
후기가 조금 늦어진 감이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이 공연은 정기공연만큼, 아니 그보다 더 열심히 준비를 한 것 같다. 물론 나만 말이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공연이 오랜만이었고, 나에게도 의미가 컸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이번에는 너무 힘을 들이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긴장을 한 탓인지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애썼는지 아쉬움도 남는다.
이번 공연은 특히 LeeJoy의 수확이 컸다. LeeJoy의 뚜렷한 음악적 방향성이 보여진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오랜만의 한국에서의 공연이라는 것, 그리고 내 음악을 어떻게든 계속해보겠다는 일종의 몸부림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미리 곡을 선정해서 매일 치열하게 연습했다. 5시간동안 한 번도 엉덩이를 떼지 않고 연습하곤 했다. 피아노로 함께했던 YeYoungSing과도 시간을 쪼개서 가능한 많이 합주했다.

고민도 있었다. 통기타로만 해야할 지, 일렉기타와 통기타를 섞어서 해야할 지 등.
결국에는 일렉기타 하나만 연주하기로 선택하고 그렇게 연습을 했다. 그 이유는 '심플함' 때문이다.
맘편하게 하나로만 하겠다는 것이다. 또 나의 음악적 방향성, 아티스트로서의 이미지메이킹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기도 했다. 또 내가 연주의 비중을 많이 가져가기보다 YeYoungSing의 피아노 연주 비중을 더 높였다. 올바른 판단이었고, 좋은 결과로도 이어졌다. Change The World의 편곡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도 알고 있었다. 혼자서 했을 때 굉장히 좋다는 것을. 그것 역시 그대로 적중했다.
보통 혼자서 악기 한 대로만 공연하는 것을 사람들은 꺼린다. 적어도 드럼, 베이스, 거기다가 피아노까지도 원한다.
단순히 소리가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뮤지션으로서 생각이 여기에서 그친다면 음악을 다시 제대로 들어봐야 한다.
우리가 요즘 듣는 많은 음악들은 소리가 풍성하다못해 과하다. 예를 들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몇 십년동안, 근 100년 가까이 듣고있는 명곡들은 그렇지 않다.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음악들이 많다. 단순히 옛날음악이라서, 향수에 젖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들려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좋은' 음악에는 일종의 통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설명이 길어질 듯 해서 여기까지 얘기하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음악의 '공백'이 가져다주는 좋음이 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의 좋은 예는 내가 '충분해요'를 일렉기타로 혼자 연주했던 무대였다.
이번 공연의 음악적인 분석은 두 가지이다.
내가 조금은 숨고 YeYoungSing이 빛나니 더 좋은 음악이 되었다.
혼자해도 괜찮다, 아니 더 좋았다.
이렇게 두 가지가 증명되었다. 두 가지에 대한 성찰은 이번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을 연결지어 생각해도 말이 된다. 특히 두번째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보았다.
밴드를 하느냐, 솔로로서 하느냐... 이것은 최근까지 나를 괴롭혔던 큰 고민거리였다.
'혼자서 하는 것이 두려운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렇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솔로로 음악활동을 해왔으니까.
'내 음악이 혼자서 연주하기에 벅찬가?' 이건 핑계일 뿐이다. 곡을 쉽게 쓰면 해결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여러 생각을 거쳐서 도달한 결론은 '홀로 서겠다'이다. 여러 짜증나는 상황들이 있었고, 그렇다고 이것에 굴복하기 싫었다.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음악의 방향을 생각해보았을때, 이것이 옳다고 느껴졌다.

음악을 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늘 음악할 궁리를 한다. 물론 먹고사는 건 쉽지않다. 가끔 '내가 너무 잘 먹고 잘 사나?'라는 생각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헝그리 정신,' 이런게 없나 싶기도 하다. 요즘 세상에 누가 굶어죽냐는 말이다. 내가 다 던지고 음악하면 먹고 살지 못하겠냐는 말이다. 안중근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글귀가 눈에 띄었다.

안중근 의사는 무엇이 중요한 지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조국을 위해 한 줌의
거름이 되어 스러졌다. 우리는 이 분이 스스로를 희생했다고 알고있지만, 안중근 본인은 희생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지 않다. 나라를 위해 응당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목숨까지 바치기는 힘들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 '손해본다'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희생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내가 해야 할 일, 아니 꼭 하고싶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사람은 무엇이든 버릴 수 있다.
'내 음악을 위해 어디까지 해봤는가?' 라고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다시, '어디까지 가볼껀가?' 질문한다.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작곡을 다시 시작했다. 버릇이 들지 않아 술술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작품들이 또 탄생할 줄 나는 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에릭클랩튼의 말처럼 말이다.
"I am, and always will be a blues guitarist."

안중근은 손가락을 자르면서 이 길을 가겠노라 결심까지 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결심이나 해봤는가? 어디까지 심각하게?... 이것은 누구에게 묻는 질문이 아니다. 나에게 묻는 질문이다.
사무엘의 결심을 축하한다. 이 결심이 나를 비롯한 후배 뮤지션들 모두에게 우리 마마세이 뮤지션 모두에게 진하게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혼자서 해도 충분히 멋있었다! 듣는 이 모두가 공감하는 말입니다. 대담한 시도를 하고 멋진 결과를 내어주어서 대단합니다! SSAM의 행보가 기대됩니다ㅎㅎ
멋진 태동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 같아 설레네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보장된 선택이 아닌, 나의 것으로 독보적이기 위한 장렬한 선택을 계속해나가는 SSAM. 치열한 싸움이 끝나고 모두가 박수 칠 그 날을 함께 꿈 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