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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어떤날이…

비 오는 날이었다.

그날은 내 맘 속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개가 뿌옇게 시야를 가린 것처럼 모든 게 흐릿해보였다. 오랫동안 연주하던 플룻이 고장나서 악기점에 들렀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내 오래된 친구가 비에 맞지 않도록 품속으로 꽁꽁 싸맸다.


악기를 고친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은 편해졌다. 여름이었지만 거센 폭우에 몸의 온기가 떨어진 나는 바지 끝단이 젖은 채로 다시 실내로 돌아왔다. 방 안에는 알게된지 얼마 안된 누군가가 있었다. 내 손에 들려있는 플룻을 보고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며 노래 하나를 틀어줬다.


플룻 선율과 함께 전주가 흘러나왔다.


창 밖에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

소리 없이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

아직도 기다리는 너


[어떤날 I - 하늘]


그 때에는 알지 못했다.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나의 시간들을 가사로 누군가가 묘사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목은 <하늘>. 다음 트랙은 가볍고도 운치있는 보사노바 리듬의 <오래된 친구>. ‘내겐 아주 오래된 친구가 있지‘…


그런 느낌을 아는가.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가 마치 나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이 노래의 주인공과 깊은 교감을 나눈 것만 같았다.

한동안 ‘음악은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은 없는’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오래도록 음악을 사랑해왔지만 어떤 음악을 좋아햐냐고 묻는 말에는 늘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좋아하는 음악이 생겼다. ’어떤날‘ 이라는 한국 90년대의 듀오라고 한다. 강렬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마치 하늘빛 같은 이름이었다. 어떤날을 만나고, 나는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음악적 사춘기를 끝내버렸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도 듣는 음악이 꽤 있었고, 그냥 이 노래 저 노래 좋다고 말하면 될 것을. 아니 좋아하기를 선택하면 될 것을. 왜 선택을 미루고 미뤘을까. 왜 내 마음 속 일등 자리를 비워둔 채로 오랫동안 지내왔을까. 그건 바로 이 날을 위한 것이었지 않을까. 이를테면 ’첫사랑‘ 같은 것. 내 맘 속에 내리고 있던 비가 그쳤다.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었던, 뜨거운 열정을 쏟아부을 곳을 찾고 싶었던 그런 마음 때문이었나보다.






누군가 내게 왜 어떤날이 좋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대답 대신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아니, 그 조차도 낯선이에게는 과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이 소중하지 않게 다루어지는 것, 퇴짜 맞는 것, 아무렇게나 떠벌리고 다니는 것. 누가 뭐래도 그냥 이기적이고 싶다.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왜 어떤날이 최고의 듀오인지. 하지만 말을 아낀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명작은 변함없이 명작이니까. 그래서 나의 어떤날을 남에게 설득하는 것보다, 어떤날을 사랑하고 그 정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다.


특별한 날이 아주 가끔 일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매일 매일이 축제이고 드라마틱하다면 특별함은 그 의미를 잃는다. 특별한 순간, 나로 빗대자면 ‘어떤날’ 이라는 음악을 만난 것 같은 일을 겪으며 우리는 달라진다. 순간의 강렬함을 마음에 품은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가며 절대 잊지는 않으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 ‘어떤날’은 그런 음악인 것 같다. ‘특별한 날’, ‘기분 좋은 날’, ‘우울한 날’ 이 아니라 ‘어떤날’ 이다. (‘어떤 날’ 아님. 띄어쓰기 없음. 자꾸 나더러 ‘어떤 날 음악 좋더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경고차 하는 소리다.) ‘어떤’ 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있다. 그런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다. 평범함에 가려진 무언가를 깊은, 또는 깊지 않은 단어들로 다시 풀어줄 수 있는. 어떤 날에 들어도 좋은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

2023.12.9 토 오전 1시 경 싱어송라이터 예영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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