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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아이폰 8이 좋다.



전에 애플에서 아이폰 X가 출시되고 새롭게 바뀐 색감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HDR(High Dynamic Range)을 도입하며 생긴 선명해진 명암의 차이와, 실제보다 약간 붉은 듯한 색감을 보고 맘에 들어 X 중고를 바로 샀었다.


애플에서 10번째 아이폰을 아이폰 10이 아닌 X 라고 명명했던 것이 전혀 무색하지 않게, 아이폰은 X 이후 카메라가 눈에 띄게 발전했다. (현재 나는 14 프로를 쓰고 있다.)

지금 당장 유튜브에서 '아이폰 단편영화' 라고 검색하면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 덕분에 고급 장비 없이 아이폰만으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나 역시 필요에 따라서 DSLR이나 작은 디지털카메라 등을 쓰긴 하지만 주로 아이폰 하나로 작업을 끝낸다.


그런데 요즘 다시 저화질 감성에 빠졌다.

우연찮게 업무용으로 쓰던 아이폰 8로 촬영을 했었는데 그 특유의 찌그러진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최근 나온 아이폰과 8을 비교하자면, 일단 색감의 차이가 크다. 아이폰 8은 색감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8은 묘하게 칙칙하게 찍힌다. 그리고 빛을 받아내는 것도 아이폰 8은 잘 감당하지 못한다. 하얀 조명을 찍으면 그대로 번지면서 날라간다. 줌인을 하면 작은 알갱이가 자글자글하게 띄듯이 노이즈가 생긴다. 그게 싫어서 8을 버리고 X로 갈아탔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실제처럼 담아내지 않는 아이폰 8의 카메라가 몹시 운치있게 느껴진다. 캠코더를 들고 찍는 것 같기도 하다.


작업에 싫증이 났었는지, 애매하게 실제와 비슷한 카메라에 이질감을 느꼈는지 다른 것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상상이 실제보다 더 좋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폰 카메라가 피사체를 더 선명하게 담아낼 수록 묘한 민망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폰 8로 촬영하면서 찍는 방식도 바뀌게 되었다. 누군가 말하는 모습을 찍을 때는 그 사람의 얼굴이 아닌 뒷모습, 또는 설명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손짓을 찍는다. 정면이 아닌 옆모습을 찍고, 사람보다 사물을 더 많이 찍고, 벽이나 천장에 달려있는 조명을 살짝 거쳐서 피사체를 찍는다. 감정과 행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클로즈업을 많이 활용한다.



사진과 영상은 그 현장을 기억하게 해주는 도구이다. 그런데 우린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당시에 찍은 영상을 기대하며 확인했지만, 생각보다 그 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가 있다. 아이폰 8은 확실이 받아내는 게 약하다. 하지만 불완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왜곡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칙칙함 색감은 운치를 더해주고, 줌인 할 때마다 깨지는 화질은 빛바랜 기억을 다시 열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줌인을 하면 손떨림이 심하게 일어나는데 적절하게 사용하면 왠지 남몰래 훔쳐보는 느낌도 난다. 그래서 다이내믹한 무빙이 아니더라도 삼각대에 고정하지 않고 주로 손으로 들고 있기라도 한다. 사람의 눈은 삼각대처럼 정확하게 한 곳을 고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이엔드보다는 하이터치를 따라가고 싶은 맘이다.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도 ‘비유’라는 것을 한다. 너무 적나라하거나 일반적인 표현은 오히려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보다는 다른 표현을 불러오는 것이다.


슬픈 눈동자 → 파란 눈동자

Sad Eyes → Blue Eyes

정체 모를 그를 조심해요 → 얼굴 없이 다가오는 그를 조심해요


영상에서 화내는 모습을 담고 싶다면, 화내는 표정이 아닌, 불끈 쥔 주먹이나 핏대 선 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환호하는 모습을 담고 싶다면, 웃는 얼굴이 아닌 힘차게 박수치는 손이나 어깨동무하는 사람들의 손을 보여주는 것이다.


회상하는 장면을 만들고 싶다면 생각에 잠긴 얼굴이 아닌 조명이나 창문을 비출 수 있다. 그림자를 찍을 수도 있다.

<어른, 사랑> 뮤직비디오 편집중.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뒷모습으로 담았다.


또는 생략을 할 수도 있다. 문장을 굳이 마무리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그대로 새푸른 꿈은 영원히 / 난 오늘도 넌 여전히 그대로”

마치 영상에서 내가 뭘하는지 다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추상화나 아이들의 그림을 좋아한다. 내가 가진 비 오는 날의 이미지는 불타는 주황색이다. 귀를 때리는 빗소리, 습기 때문에 괜히 후덥지근해지는 등짝, 시끄럽게 물살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버스 때문에 생기는 불쾌함. 물은 투명하고 하늘은 회색이지만 이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 시각적인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말이 길어질 것 같다.


 

아이폰 8로 요즘 하고 있는 짓거리가 있다. 올겨울 1월 13일, 마마세이 레코드의 싱어송라이터 jinsungyoon 씨의 새 앨범이 발매된다. 며칠 안 남았다. 제목은 [느슨한 패밀리]로 말그대로 진성윤씨의 느슨한 패밀리들과 함께 앨범을 완성하는 것이다. 새로운 곡을 쓰는 게 아니라 예전에 만들었던 곡들을 새로운 뮤지션들과 리메이크를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수록곡이 무려 스무곡이다. 20곡을 사람 바꿔가며 녹음한다니. 어쨌든 모든 곡을 영상으로 담았다. 그러니까 20개의 노래와 20개의 영상을 제작하는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이 긴 마라톤 같은 프로젝트에서 아이폰 8의 활약이 정말로 빛났다고 자랑하고 싶다.


추운 겨울 자칫하면 게을러질 수 있는 이 계절에, 우리에게는 몰두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 (2024.1/13) 그 모든 과정을 '공연'으로써 팬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당신이 만약 진성윤씨의 느슨한 패밀리라고 생각된다면...


2024.1.13 토 / 5:00 PM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금일로 65, 굿프렌즈 언더그라운드 2층

Welcome Loose Fami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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