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기계들이 날 조여와도
#1 가끔은 알람을 끄고 싶을때도 있다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 등을 다 가지고 있는 나는 앱등이다. 주변에 애플워치를 쓰는 사람이 많아 뭐가 좋은가 하고 가만 살펴보니 꽤나 괜찮은 기능이 많더라. 얼마나 걸었고 앉아있었는지도 알려주고, 알람 시계 기능도 해주고, 휴대폰 어디갔는지 찾을때도 유용하고… 고민을 하다가 중고로 엄청 싼 매물이 있어서 아싸리 구입을 했었다.
처음에 애플워치를 가졌을때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점은 '알람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 두 달 쯤 지났을까,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를 피곤하게 상당히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알람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애플워치를 팔게 되었다.
내가 애플워치에게 구속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애플워치를 처분했다. (잘 쓰고 있니 도비야?)
(이 타이밍에 갑자기 언니가 애플워치를 살지말지 고민한다니. 이 글 링크를 보내줘야겠다.)
#2 에어팟을 팔았다
애플의 에어팟은 참 잘 만든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에어팟이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도대체 저 거액의 상품들을 내 친구들은 (중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어떻게 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거야? 싶었다. 열에 여덟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중화가 되었었다.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까지 다 가지고 있는거지? 생각했었다.
빌려 써보니 알겠더라. 빠른 동기화, 음질은 물론 좋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좋게 생기고 간지도 좀 났다. 왜 그 돈 주고 사는지 70%정도는 알겠더라.
운동할 때는 무선 이어폰이 편하다는 결정적인 점 때문에 앱등이로서는 다른 무선 이어폰이 아닌 에어팟을 샀었다. 중고로 싸게 샀으니 잘 들고다녔었다. 녹음 작업을 할 때에는 에어팟보다는 유선이어폰을 쓴다. 음성녹음을 하던, 미디 작업을 하던. 녹음을 받을 때 에어팟 마이크는 먹먹하게 녹음이 되고 시간차가 있어서 아주 살짝 느리게 인식이 된다. 그 때문에 그렇다.
인식도 빠르고, 기능도 별 건 없지만 쏠쏠하고 음질도 좋고 예쁘기도 한 에어팟을 잘 쓰고 다녔지만… 은근히 불편한 점들이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유선 이어폰으로 점점 갈아타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유선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데 음질이 너무 좋았다. 통화도 훨씬 깔끔하게 되고, 그냥 연결만 단순하게 하면 되는 이 유선 이어폰이 굉장히 좋게 느껴졌다.
에어팟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에어팟도 팔고 유선이어폰을 너무나도 잘 쓰게 되었다.
#3 자동이 더 불편하다
얼마 전 어쩌다 아빠가 차를 바꿨다. 모든 기능들이 다 있었고 대부분의 기능이 자동이었다. 심지어 앞좌석은 얼추 괜찮은 마사지 기능까지 있었다. (;;)
결정적으로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데 난 이게 너무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거다. 닫히는 느낌을 내가 직접 느낄 수 없으니 꼭 한 번 '잘 닫혔나?' 돌아봐야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심지어 의자가 앞 뒤로 이동하는 기능, 등받이 기울기를 바꾸는 기능 이외에도 의자 자체를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기능, 앉는 부분 각도를 바꾸는 기능, 다리 받침도 있어서 그것도 이동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가장 처음 뱉은 말은 "와! 진짜 신기하네, 되게 편하다" 였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 기계가 날 조종하는게 아니라 내가 기계를 조종하는 것 같아서 묘하게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동이 더 불편하더라.
#4 "편지해!"
얼마 전 내 친구 기쁨이가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두 달 동안 휴대폰 없이 지내는 헤프닝이 있었다. 주변에선 다들 어떻게좀 해보라고 했지만 '나와라 뚝딱!' 한다고 나오겠는가. 연락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 휴대폰을 빌려야만 했고, 맥북을 들고다니면서 와이파이가 되는곳에서만 연락을 하고, 송금을 하려면 은행에 가야하는 (21세기에… 이럴수가!)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엔 정말 불편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두 달 동안 휴대폰이 없이 사는 삶은 어떨까 싶었다. 재밌는 상상이었다. 사실 그렇게 크게 문제 없이 기쁨이는 잘 살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야, 그냥 편지해!" 라고 누군가 말했다. 너무 재밌는 한 마디였다. 요즘 시대에 누가 은행에 가서 송금을 하고 연락한답시고 편지를 보내나.
#5 아이패드를 팔았다
휴대폰보다는 좀 더 큰 모니터가 있으면 좋겠고, 맥북은 언제든지 들고다니기에는 좀 헤비하니까 아이패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오래전 에어4를 구해서 잘 썼다. 그런데 쓰다보니 이것도 생각보다 무거워서 더 라이트한 아이패드 '미니'로 바꾸기까지 했었다. 굉장히 잘 썼지만, 또 쓰다보니 막상 좀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큰 아이패드로 바꿀까 하고 미니를 내놨다.
한 두 달쯤 지났을까, 내놓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나름 팔려고 내놓고도 잘 쓰고 있었어서 고민이 되었다. 고민한지 오래지 않아 그냥 처분하자는 심플한 결론이 났다.
#6 난 맥북없이 못살아?
맥북이라는 존재를 고등학교 1학년때 '미디작곡 전공'으로 있으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막상 작업용으로는 많이 쓰지 않고 이것저것 문서작업 종류나 글쓰기 등에 맥북을 너무너무너무 잘 쓰게 되었다. 내 삶에서 꼭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되었다.
앉아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장시간 맥북을 보고 있기는 일쑤였다. 메모장에는 843개의 메모가 있고, 문서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이만큼 왠만한걸 맥북으로 해결한다. 맥북을 열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맥북을 닫으면서 하루가 끝났다.
최근 일을 하는 양이 많아졌던 때, 나는 이 맥북이 처음으로 '질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이 맥북속에 모든것이 다 들어있을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던 것 같다. '초기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전부 사라질 이것들을 나는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모니터 안에 진짜 세상이 있다고 착각하며 분신처럼 함께해온 것이다. 모니터를 오래 보면서 눈이 아프다고 생각하기가 처음이었고, 목 디스크 증상까지 심해진걸 보면 분명 맥북 때문이었다.
이 기분이 싫었다. 맥북을 들고다니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한 이 기분을 느끼는 내가 싫었다. 내 할 일을 꼭 이 모니터에 적어야 하고 수시로 이걸 들여다봐야하는게 싫었다. 서랍속에 메모지는 쌓여있고, 펜은 색깔별로 다양히 쌓여있는데 이것들을 버려야하나 싶었다.
…
없이도 잘 살았다. 없을땐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있어보니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진거였다.
내 감각은 점점 무뎌져가고 있는 듯 했다. 시력은 어느새 마이너스가 되었고 10분에 한 번씩 고개를 젖히지 않으면 목이 아파서 힘들 지경이 되버렸다. 리조이의 음악 'Easy World'처럼 너무 편리하고 알기 쉬운, 뭐든지 갖기 쉬운 세상이라서 내가 이렇게 된 것 같았다.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한다. 애플워치, 에어팟에 이어 어제 아이패드를 팔아넘겼다. (맥북까지 팔지는 않겠지만ㅋㅋㅋㅋ) 그러면서 나는 다시 굳게 다짐했다. 나의 감각들을 다시 깨우기로. 그까짓 악보는 그냥 손으로 그리고 외워버리기로. 할일과 일기는 텍스트가 아닌 손글씨로 적기로. 무거워도 꼭 종이책을 들고다니며 읽기로. 알람은 좀 끄고, 기계가 아닌 내 뇌가 이루어낼 놀라운 일들을 지켜보기로. 기억의 감각과 촉감을 더 깨워주기로. 그냥 조금 불편하게 살면서 사람답게 살기로.
딜라이트의 '아날로그 운동'에 동참할 사람이 있다면 환영한다. 또 좋은 아이디어가 뭐가 있을지 대화 나눠보자. 아, 채팅으로 말고 '얼굴 보면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참 재밌네요. 저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적절한 선을 찾아가야겠어요🗒️
아날로그의 산 증인이 되겠군요!! 널리널리 알려주세요~~
애플워치는 매우 잘 쓰고 있습니다! 전 오히려 애플워치 덕분에 휴대폰을 더 안 보게 되어 좋네요 ☺️
사실 나도 리조이 폰 잃어버렸을 때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엄청 부러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