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은 비겁하다
- YeYoungSing

- 4월 21일
- 2분 분량
확률은 비겁하다. 확률은 우리에게 미래를 말해줄 것 같지만, 과거의 결과를 모아놓은 데이터 혹은 경우의 수 일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 앞에 팔짱을 끼며 ‘거봐 내 말이 맞지’ 라고 말한다. 다음에는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확률에 기대어 미래를 확신하곤 한다. ‘저번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거야’. 그리고 그 지레짐작은 대다수 부정적인 방향이다. ‘저번에도 잘 안됐으니 이번에도 잘 안될거야’.
현대물리학의 영자역학에서 소립자는 관측이 될 때야 그 모습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어있거나 살아있거나 ‘확률로서’ 존재한다. 이미 죽어있거나 살아있는데 나중에 그 결과를 알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확률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죽은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를 동시에 갖고 있다가, 관측하는 순간 둘 중 하나로 정해진다는 말이다.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미래를 예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소수의 사람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걸까. 그들의 인생은 유난히 긍정의 타율이 높은 것일까. (행복을 부富로만 얘기할 수 없지만, 부와 빈의 끝단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엇비슷하게 살아가는 듯 하다. 나도 내 옆 사람도 내 옆 옆 사람도 일주일에 두 번 꼴로 운 나쁜 일이 생긴다고 치자. 비슷한 빈도로 넘어지고, 비슷한 빈도로 좋은 일이 생기고… 그런데 어떻게 ‘나는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실패했으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도 ‘남들보다’. 주관적인 생각이 데이터를 왜곡한다면? 우리는 쉽게 낙관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어쩌다 한 번 생기는 실패에 기다렸다는듯이 ‘거봐 나는 안된다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것도 확증편향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내 인생은 긍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일 중 뭐가 더 많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날마다 기록하려 한 적도 있었다. (심심했었나.) 그걸 세어볼 시간에 성공과 실패 사이에 발을 걸치고 있는 나의 하루를 성공으로 만들면 된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던걸까. 세상을 구성하는 소립자는 확률로서 존재하며, 관측자가 관찰할 때야 물질로 변한다는 양자역학의 말을 믿어본다면 삶을 더 재밌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100%와 같은 삶을 원한다. 100%가 한 번 99%가 되면 다시는 100%가 될 수 없다. 진리가 100%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100%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과연 100%인 것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여러 개 있을까, 단 하나만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의 삶은 100% 완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100%를 본능적으로 상상하고 쫓아가는 것은, 100%가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나의 상상속엔 완벽한 나를 꿈꿀 수 있죠. 확률이란건 어쩌면 사람들이 갖다붙인 어떤 말 안되는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하하, 어떻게 내 인생이 ’구십 몇 프로‘ 이겠습니까. 속임수도 참 가지가지다. 인생을, 참 인생을 알고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