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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위대함

나의 시간은 늘 빨랐고, 나의 감각들은 '작은 것'들을 잘 눈여겨 보지 못하고 지나쳐왔다.


나의 속도를 늦추어야 할 필요도 몰랐고 나에게는 그 속도가 기본값이라 다른 사람들의 템포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 '정도가 지나친 사람'(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무감각하다, 아니면 무디다, 무심하다.. 이런식의 '무'가 들어가는 단어들을 나 스스로에 대해서 많이 떠올리는 편이다. 소금을 많이 넣든 적게 넣든 나는 차이를 잘 모르겠고, 연분홍이나 진분홍이나 비슷해보이고(실제로 이정돈 아니지만 비유를 들자면..). 어렸을 땐 잘 몰랐지만 공동체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이런 부분에서 내가 무디다는 것을 점점 느껴가게 되었다.


(다 같은 장미이지만 색깔이 다른 다양한친구들)

 

(비오는 날, 판교역 광장)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완성된 것'을 항상 추구하는 사람이다. 어설픈 모양새는 허접하다고 치부했던 것 같다. 삐까뻔쩍하고 있을 것 다 갖춰진 그런것을 좋아한다. 오피셜한것을 선호한다고 할까? 시골보다 도시를 좋아하고 정감가는 것보다 깔끔하고 화려한것을 좋아한다.

어떻게 말하면 욕심이 많다거나 야망이 넘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까진 이런 나의 특징들을 성실하거나 성과를 잘 낸다는 강점과 연결되는 특징이라며 긍정적인 쪽으로 여겨왔다.(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이런것에 지치기 시작했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것을 직감하며 허무함으로 조금씩 치닫기 시작했다. (참 감사하게도 최근 하나님이 이런 나의 지친 마음을 아셨는지, 신앙 서적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을 내게 주셔 이런 나의 특징들이 내가 스스로 세운 우상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남들은 10원이 있어도 만족한다면 난 1000원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작은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더욱 크고 화려한것을 만들어내려고 애써왔다는걸 알았다.


그 깨달음이 있고 나서, 어느순간 세상이 지어진 '신비'에 대해서 눈이 가기 시작했다.

(색의 신비)

 

음식을 만들 때, 재료를 10g 넣느냐 11g넣느냐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고 10분 굽느냐 11분 굽느냐에 따라서 색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 신비. 빨간색 물감에 흰색 물감을 한 방울 넣느냐 두 방울 넣느냐에 따라서 색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 신비. 앞머리를 1cm 자를것이냐 2cm 자를것이냐에 따라서 완전히 인상이 달라지는 이 신비..


가만히 이런 신비들을 떠올리고 계속 곱씹어보니 너무 놀랍더라. 나는 '1'만큼 더한다고 해서 성에 차지도 않고 차이를 느끼지 못해 '10'을 들이붓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고작 '1' 만으로도 놀랍게 변화하는 놀라운 것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작 이걸로 이렇게나 달라진다고?' 싶은 생각들을 들게 만드는 경이로운 장면들을 주목하게 된다.


(햇빛이 예쁘게 들어오는 내 방)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만 생각해왔었다. 나는 그냥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게 밝혀졌다. '감상'을 할 때에는 도대체 어떤 감각을 깨우고 무엇을 봐야하는지, '여행'을 할 때에는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나는 몰랐다. 어색하고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품을 듣고 감상할 때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작은 것들에 집중 하다보니 죽어있던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 들고, 여태 나는 다른 세상에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듯 세상의 신비를 보기 시작하니 '1mm'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작은 것들'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참 세상은 경이롭다.

오늘 또 새롭게 발견할 '작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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